이글루스


에니어그램과 주화입마(...).

 

 에니어그램은 그 내용 자체보다도 그 내용이 정확하기 위해 전제가 되어야 하는 '사람의 성격은 태어났을 때부터 결정되어있다'라는 부분이 더 무시무시하다. 그러니까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어떤 성격일지 결정되어있고, 남은 평생을 그 성격의 틀 안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셈이다. '나는, 나만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감정적 욕망을 고려해보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결정되어있어, 케케케'라는 선고 같은 거라서 무척이나 괴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말한 부분이 얼마나 관련되어있는지 모르지만, 에니어그램을 처음 접하고 거기 심취하게 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인간의 조악함에 실망하고 냉소하는' 과정을 겪는다. '인간이란 태어났을 때 성격이 이미 결정되어있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도 일정한 패턴에 얽매여있으면서 그걸 자각하지 못한다. 인간이란 예측할 수 있고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일단 인식 자체가 서투른 거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인식의 아래에 감춰져있는 것은 자신 또한 그런 인간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삐뚤어져나가는 건 그때부터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 인간이란 그저 어리석고 나약한 생물로 위대한 진리를 깨달으신 자신보다 열등한 무엇인가-가 되어버린다. 인간에 대해 '보통 사람'이 가지지 못한 상위의 인식을 손에 넣었다는 믿음이 인간을 망가뜨리는 과정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무엇인가이다. 그 사람 본인이 타고났을 인간으로서의 성격, 그릇에 따라서 자아도취에 빠지는 이도 있고, 삶과 인간에 절망하는 이도 있으며, 인간의 성품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여 타인을 조종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도 생겨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허황된 자기상을 만들어버리고 나면, 현실의 자신, 있는 그대로의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자신이라는 실체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가지는 자기상 간에 너무 큰 격차가 생겨난다. 좌절을 견디기도 힘들어지고 현실을 직시하기도 힘들어지고 무엇보다 자신을, 인간을 사랑하기가 힘들어진다. 

 P.S. 지난 6개월 동안 이 증상에 해당되는 사람을 목격한 게 3번째.

by Moonseer | 2009/08/08 06:57 | 심리학, 철학, 문학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mirrorS.egloos.com/tb/420655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소박하고도 at 2009/08/10 02:41
하하 정말 종종 경험하는 인간형인 것 같아요. 뭐 저도 그랬다가 안 그랬다가 반복하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는 어디에 해당됐었는 지(에니어그램에서) 벌써 까먹었네요.
Commented by Moonseer at 2009/08/16 10:04

잊어버리고 기억해내고를 반복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