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04일
다크타워 1, 2권 한국어판.
스티븐 킹의 글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 그건 때로 신선한 피의 향기일 때도 있고, 말라붙은 후의 냄새일 때도 있다. 가끔은 달짝지근한 역겨움이나 쓰디쓴 아림이 느껴질 때도 있다. 다크타워는 이런 여러 종류의 피 냄새가 뒤섞여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신선하고 풋내가 나는 피, 점점 달콤해지고 역겨워지다가 최후에는 감미롭고 강렬하다.
다크타워는, 그 자신이 말하듯이, 스티븐 킹의 magnum opus(평생의 걸작)이다. 그는 젊을 때부터 오랜 시간 대중작가로 활동해왔고, 때로는 필명을 바꿔쓰기도 하면서 여러 장르의 작품에 도전했다. 내가 다크 타워 시리즈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의 작가로서의 다재다능함과 관계가 깊은데, 모두 7권으로 구성된 다크타워는 1~4권까지는 4~6년 주기로 잊어버릴 즈음에 한 권씩 나왔고 각각의 책에 담긴 이야기의 장르나 느낌도 그 즈음의 스티븐 킹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스티븐 킹이 교통 사고로 죽을 뻔 했던 이후 마음을 다잡고(...) 시도했던 일들 중 이 다크타워의 이야기를 완결짓는 게 있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판타지, 공포, SF, 서부활극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가 섞여있어서 어떻게 흐를지 예측하기 어렵고,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게 이 시리즈의 최대 특징일 것이다.
다크타워의 각 권은 이야기로서의 수준 차이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제 1권인 <최후의 총잡이(The Gunslinger, 1982)>의 초고를 썼을 당시의 스티븐 킹은 열 아홉 살이었다고 하는데, 몇 번인가의 재출판을 거치면서 손봐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1권의 이야기는 겉멋이 들어가있고 거칠다. 2권인 <세 개의 문(The Drawing of the Three, 1987)>으로 넘어가면 여러 이유로 이야기의 수준이 확 올라가는데, 다크 타워가 그 재미에 비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제 1권에서 적지 않은 독자들이 '이게 뭐야'하고 내던져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참아라, 이건 뒤로 갈 수록 재미있어지는 종류의 이야기니 말이다. 다크타워라는 이야기가 정말로 본 궤도에 오르는 것은 제 4권인 <Wizard and Glass(1997)> 이후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한국어판의 번역은 나오지 않았고, 앞에서 이야기한 이유 때문에 1-2권의 판매량이 부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다크타워라는 이야기의 진가를 확인하려면 스티븐 킹이 작심을 하고 이야기를 끝낸 5-7권(2003년에서 2004년 동안 2년 간 그는 이 시리즈를 집필하는데 전력투구하고 있었다)을 읽어봐야 하므로 갈 길이 멀다.
다크타워 1권은 길고도 긴 이야기의 시작이다. 주인공 롤랜드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이야기의 구도를 잡고 자신을 소개한다. 약간 힘이 들어갔다 싶은 전개들도 있지만 그걸 좋게 보자면 좋게 볼 수도 있다. 롤랜드의 옛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다른 등장인물들이 지나가듯이 내뱉는 이름들도 이후 시리즈에서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에 잘 기억해두면 이후 시리즈를 읽을 때 도움이 된다.
다크타워 2권(국내에서는 상, 하 2권으로 분리되어 나왔다. 미국과 한국의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방식 차이 때문이다.)에서는 이후의 이야기들에서 활약할 주인공 롤랜드의 동료들이 모여드는 과정이 그려지고, 이 이야기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1권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책을 읽게 될 이의 즐거움을 위해 내용에 관해서는 가급적 다루지 않고 있는데, 이 소설도 J.R.R. 톨킨의 <반지원정대(Lord of the Rings)>에 큰 영향을 받았다-라고 스티븐 킹 본인은 겸손하게 '인정'한다. 여러 목적을 가진 '선한' 이들이 모여서 '검은 탑'을 목표로 한다는 점도 그러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 소설은 톨킨의 아류라고 보기보다 좀 더 원천적인 에픽 판타지의 틀-예를 들자면 아더왕 전설의 성배를 탐색하는 기사들 이야기 말이다. 롤랜드를 보면 성배 탐색자였던 갤러해드가 저런 성격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을 따라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선배인 톨킨이 가던 길을 후배인 킹이 쫓는다-라고 평가하는 게 문학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끼시는 분은 <Lord of the Rings>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당시 문학계가 수준낮고 허무맹랑한 소설이라며 폄하했었다는 것도 떠올려보실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스티븐 킹이 이 작품의 방향을 잡게 되는 과정에서의 흐름이 꽤 흥미롭다. 스티븐 킹은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Childe Roland to the Dark Tower Came>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로버트 브라우닝도 그 시를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 왕(King Lear)>의 한 구절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서 쓴 모양이다. 이런 식의 '원형적 상징의 계승' 과정을 살펴보면 칼 구스타프 융이 이야기하던 집단무의식이라는 게 실존한다는 느낌이 든다.
P.S. 2권에 동봉된 타로트 카드 11장은 좀 미묘한 느낌. 그림도 좋고 상징의 재해석도 무난한 수준인데, 점을 치는데 사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
P.S.2. The Stand라든가, 다크타워의 연재 및 세계관의 연계에 대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뺐습니다. 스티븐 킹 팬 여러분은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 [다크 타워]를 읽고 by powerenters
-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스티븐 킹 by springvil
- 다크 타워 1부(The Dark Tower I : The Gunslinger), 스티븐 킹, 1982(2009:한국) by 엘민
- 렛츠리뷰 두 번째 당첨~ by 공국진
- 스탠드 - 킹 by 얼음칼
# by | 2009/07/04 07:06 | 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흥행이 어떨 지는 잘 모르겠어요. 잘 팔리면 좋을 텐데.
뭐 젊을 때는 다들 그렇지 않겠어요. :) 겉멋 들어갔다며 씹어도 일단 기본적인 수준이 높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