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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혐오에 관한 단상.

 

 그리고, 김지하 시인은...


 지금 세상에선 이상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황석영 변절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세상이 떠들썩하게 봉하마을 노씨 상가로 조문행렬이 이어지는 것, 독감, 존엄사 인정. 한동안 이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듯,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두 개의 명제 '생명과 평화'는 눈 씻고 봐도, 그 어디에도 자취 없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더욱이 자살한 사람 빈소에 촛불이 켜지고 있다. 자살이라는 이름의 비겁한 생명포기에도 촛불인가. 그렇다면 그 촛불의 정체는 무엇인가.

 - 트랙백한 글에 인용된 김지하 시인의 글 중에서 발췌 - 


 자살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종교와 문화권에서 금기시되고 있다. 기계적으로 보자면 사회의 자산이 줄어든다는 면에서, 감정적으로 보면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감이 크다는 점에서,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자살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실수이자 잘못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더할나위없이 경직되어있고 고압적인 한국 사회이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자살이므로 존중받을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는 힘을 얻는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타살'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도, 타살되었다는 음모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런 자살에 대한 터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요즘 회자되고 있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등의 자살과 관련해 진중권 씨가 했던 자살세 발언도 부분적으로는 이런 자살터부, 자살혐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를 옹호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선악개념도 도덕률도 법도 모두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자살은 어떻게 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눈을 돌려봐야 할 것은 자살자에 대한, 그리고 그 자살의 이유에 대해 동감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문제이다.

 사람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자살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 자신이 살아있음으로 인해서 잃어버리는 가치 - 명예, 의지, 평안, 자아도취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 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가 사회의 도덕률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자살자가 어떤 이유로 자살하는가 하는 건 각자 다르다. 타인이 보았을 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그가 한 선택을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건 사람의 마음이 그걸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자살이 단순한 도피였다면 사람들이 이토록 슬퍼할 것이며, 그가 궁지에 몰릴 때까지 정부와 언론이 취한 방식이 그리도 부당한 것이 아니었더라면 사람들이 이토록 분노할 것인가? 

 정치적인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공정하지 않은 정부와 정직하지 않은 언론이 대한민국을 움직인다는 증거이다. 노무현이라는 아이콘에 관심이 집중되고 가치가 부여될수록 '노무현적인' 가치를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며, 그에 반대되는 입장에 선 이들은 곤란함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이유로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며, 정 반대로 자살을 옹호하는 난감한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한 쪽 입장이 옳고 다른 쪽 입장이 그른 것보다는, 양자가 모두 기본적인 룰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아귀다툼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by Moonseer | 2009/05/29 18:39 | 심리학, 철학, 문학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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