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30일
LA에 가서 한 달 정도 지내다 오게 됐습니다. 다니던 회사는 퇴직이랄지 휴직이랄지 모를 미묘한 상태입니다.
시애틀에서 공부하면서 일하게 되는 건 얼마간 연기되었는데, 아직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회 기계의 부품으로 지내다 보니까 감수성을 비롯해서 인간에게 중요한 요소들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인간이 아니라 생물에게 중요한 요소들도 몇 가지 있어서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고민 중입니다.
# by Moonseer | 2008/07/30 17:54 | 그 이외 | 트랙백 | 덧글(3)
2008년 06월 12일
언제나처럼 제 '색깔'을 알고 싶다 요청해주신 분들을 위해서 적어둡니다.
제 블로그에는 촛불이 걸려있습니다. 이건 제가 촛불시위 지지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촛불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는 민중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것에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해 지지합니다만, 이 시위가 이어져서 항쟁이나 혁명으로 이어진다거나, 현재의 집권층을 '몰아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뭐였든, 합법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선거'에서 저는 제 바램과 다른 결과를 맞았고, 아직까지도 이 사회의 질서와 원칙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그리고 그걸 뒤집어엎으면서까지 다른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진보층'을 표방하시는 분이 제게 지금의 사회가 잘못되었으니 일단 부수어야 한다거나 하고 말한다면 단호히 거절할 거고, 제게 압력을 행사하려고 하신다면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싸울 겁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잘못된 현실에 대해서 '잘못되지 않았다, 그게 옳은 거다'라는 식으로 합리화하고 거짓을 뿌리시는 분들을 진심으로 증오합니다.
# by Moonseer | 2008/06/12 20:12 | 그 이외 | 트랙백 | 덧글(1)
2008년 06월 10일
"다 같이 먹자, 혼자만 먹으려고 하는 녀석은 동료가 아니다."라고.
이게 어디 나오는 문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소설이었을 테지. 난 이 문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다. 원래 쓰려던 글은 이게 다고 지금부터는 별 의미도 두서도 없는 주절댐이니까 더 읽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고 말해두는 것도 자기만족을 위한 거려나.
복잡하게만 보이는 세상도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보면 단순하다. 자기가 편하려는 것, 안전하려는 것, 인정받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그렇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피와 기름을 짜내야 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로 상대방이 최소한의 인권과 생명조차 존중받을 수 없게 된다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다.
약육강식의 섭리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착취와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약육강식이 정당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계에서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부모와 속한 사회, 국가가 진 빚 때문에 젊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일해서 먹고살다가 노동할 수 없게 되면 비참한 삶을 보내야 하는 세계는 자연계에서는 펼쳐지지 않는다.
나는 미국의 어떤 사람에 의해 한국의 더 많은 사람들이 착취당하고, 다시 그 사람들에 의해 중국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착취당하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네 살 때부터 하루에 18시간 동안 작업실에 갇혀 축구공을 붙인다는 것도. 그게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하기 이전에, 내가 그렇게 착취당하는 입장의 사람이라면 난 사회의 법칙이나 도덕 같은 것에 대한 존경심 같은 건 전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살아봐야 개같을 뿐인 삶이라면 그 누구를 죽여서라도 그보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사회에서 구조상 착취하는 사람이 악하고 착취당하는 사람은 선량하다-는 통념에 대해 굉장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난 내가 일하고 노력하는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니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입장에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때떄로 상대를 깔아뭉개서 자신을 위로하려 하는 일이 더 많다. 결국 이놈도 저놈도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선량한지 선량하지 않은지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올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뒤틀리지 않은 생각을 하고, 그걸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알게 된 건, 내가 꾸고 있었던 건 어린아이의 꿈이라는 것이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짐승을 먹는가 사람을 먹는가의 차이일 뿐으로,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서로를 잡아먹고 있다. 좋든 싫든, 그 속에서 숭고한 척 고고한 척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며 청승을 떨거나 그런 더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려고 하거나, 결국은 다 잡질이다. 내가 원하던 건 내가 믿던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었다. 다른 방식이 필요했던 거다.
결국 좋거나 싫거나 우리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얽히게 된다. 정당하고 아니고 자시고를 떠나서, 같이 살아가는 시늉이라도 하는 이상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줄 필요가 있다. 그게 싫다면 간단하게, 서로 죽고 죽이면 된다. 멍청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힘이 있을 떄는 죽고 죽이기를 선호하고 힘이 없으면 뭉쳐서 힘있는 자를 죽이고 싶어하지만, 사실은 내가 가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남을 짓밟는 것 자체가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에서 멀어지는 과정이라는 건 뻔하다. 중염불일 뿐이라 탈이지.
개혁은 힘없는 자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진심을 담아 말하든, 그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권력자들에게 있어 장애물이고 방해일 뿐이다.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이 숭고한 뜻을 품었다 하더라도, 권력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권력자를 쓰러뜨리기 위한 기회이자 이용물 정도일 뿐이다. 힘이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거기 따르고 싶지 않다는 걸 표명하는 항쟁,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혁명이다. 그리고 혁명은, 그게 아무리 근사해보이고 좋아보여도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대가를 요구한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걸 인식하고 그걸 따라 살기를 원한다. 이기적으로 사는 건 멍청이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사는 건 얼간이고, 욕망이나 명예만을 쫓는 건 불쌍한 사람이다. '정말로' 바라는 게 뭔지 자각한 다음에도 '그건 되지도 않을 일이니까 그냥 꿈이라 생각하련다'라는 사람은,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부터 그러질 못해서 답답해하고 있으니, 이러면서 세상일에 대해 고민하느니 자기 자신을 구원할 궁리부터 하는 게 현명한 일이리라.
서글프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다. 당신이 만약 당신이 옳다고 믿는다면, 사람과 삶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의 세계가 잘못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면, 그래서 이 세계를 어떻게든 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노력하고 고통을 감수해서 당신이 세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영향력을 가지려고 노력해라. 그리고 이 세계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발버둥쳐봐라. 나는 그게, 이 빌어먹을 인간이라는 종으로 이 빌어먹을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화가 좀 풀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항상 세상에 대해 화가 나있고 삐져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좀 더 다른 길이나 선택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주저리주저리, 가슴 속에서 넘쳐서 두서없이 흘러나오는 소리. 여름 기운이 완연한 밤이건만 그림자는 서글프게 늘어져있다.
# by Moonseer | 2008/06/10 00:02 | 그 이외 | 트랙백 | 덧글(1)
2008년 06월 02일
개혁은 위에서부터, 혁명은 아래에서부터.
나는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낀다. 뒤집어엎을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고 느끼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by Moonseer | 2008/06/02 12:07 | 그 이외 | 트랙백 | 덧글(7)
2008년 06월 01일
내가 처음으로 연애를 했던 건 스물다섯 때의 일이었다. 연애를 하게 되면 사람의 본바탕이 나오기 마련이라는데, 내 본바탕은 지독하게 극단적이고 편협해서 소유욕과 분노, 배신감과 자괴감, 서글픔과 답답함 같은 것들이 뒤섞여있었다. 이런 나는 대체 뭘까 하고 혼란스러워져서 '사랑의 기술'을 읽고 있던 내게 최초의 연인은 말했다, "그런 책을 읽고 있으니까 연애를 못 한 거야."라고.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는 않는 내 게으름에 비추어본다면 그건 옳은 말이었으리라. 자신의 상태에 대해 확신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게 되는지에 대해 알 수 없었던 그 당시의 날 비추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었으리라.
나는 세상에서 사랑이라고 불리우는 것들 중 대부분이 환상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정신적인 사랑이라고 불리우는 것들 중 상당수는 자아도취의 연장이고, 남녀 간의 사랑 중 상당수는 성욕의 산물이다. 우정이나 가족애, 동료애, 애국심, 여타 뭐라고 이름을 붙이든 그런 감정들 중 상당수는 개인적인, 혹은 집단적인 이기주의나 자아도취의 산물이다. 문제는, 무엇이 '순수하고 올바른 사랑'인지 무엇이 아닌지를 결정지을 수 있는 기준 같은 게 명확할 수 없으며, 명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선악의 문제, 도덕의 문제, 질서의 문제 같은 것이 뒤섞여 들어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꼬인다. 무엇이 '사랑'이며 무엇이 아닌지, 사람에게는 그걸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다. 하지만 그걸 이성적인 언어나 논리로 옮기려 하면 할수록 좀 더 확고한 오해가 발생한다. 종교가와 철학자, 심리학자들 중에는 이런 걸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심오한 비유와 '사랑이 아닌 것은 이런 것이다'라는 설명으로 거기에 대해 전달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실상,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이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여러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런 '진리'는 별 쓸모가 없는 법이다.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 사랑,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른 삶을 짓밟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 by Moonseer | 2008/06/01 13:44 | 넌픽션 | 트랙백
2008년 06월 01일
3월이 가고, 4월이 가고, 5월이 가고.
시계바늘 위를 걷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반 년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예정대로랄지 예정과 다르달지 알 수 없는 상황. 겉보기에는 제법 그럴 듯하나 실상은 아주 처절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가을이면 시애틀에서 일하고 있을 거고, 그 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뭐랄까, 잃고 싶지 않았던 걸 계속해서 잃다보니 초연한 걸 넘어서 고통이 당연해졌다. 심장의 색이 바랜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고 문득문득 느낀다. 그녀의 존재가 내 마음을 밝히고 있지 않다면, 사는 게 무척이나 싫을 거다.
나는 내 세대가 살만큼 살다가 인간 사회가 붕괴하는 걸 보는 최초의 세대가 되리라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걸 보면 도미노가 쓰러지는 게 내 생각보다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절망이 가득한 세계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느냐 하는 게 삶의 목적이 된다면, 이것 또한 모순이다. 절망이 가득한 세상이니까 그냥 절망하자고 한다면 삶의 본분에서 어긋난다.
나는 내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이 모든 어리석음과 추함을 불러오는 사람이란 존재가 싫어서 혐오감을 품는다는 것도, 그러면서도 그게 그리워서 손을 뻗는다는 것도, 수행도 믿음도 그 자체만으로는 그저 공허하다는 것도. 그래도 살아있고 살아간다.
# by Moonseer | 2008/06/01 13:21 | 그 이외 | 트랙백
2008년 05월 11일
이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부분의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삶의 거의 대부분을 소모한다.
인간은 자연의 본질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속성 덕분에 더 많은 안전을 확보했지만, 정작 그로 인해서 얻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좋은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약빨이 다 되어간다.
# by Moonseer | 2008/05/11 09:06 | 그 이외 | 트랙백 | 덧글(5)
2008년 05월 03일
그래도 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양심인지 오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현재의 대통령이 되신 분에 대한 인물 평가.
'우수한 사람, 성공한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저는 이런 성격을, 가치관을 가진 분들이 집단의 대표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무척 안 좋게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한 가지나 두 가지 정도 단점은 있고, 그걸 평생 어쩌지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리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도 알고보면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분들이 대표자가 되면, 스스로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욕망 때문에 대표자로서의 책임 - 자신이 대표하는 집단 구성원들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 보다 '나는 뛰어나다'라는 이미지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거짓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왜 거짓을 만들어내냐 하면, 그게 제일 손쉽게 '멋진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법이거든요. 겉보기에는 그럴싸하고, 내실은 전혀 없는 그런 결과.
그런 게 제일 무섭습니다. 그럴싸하게 포장해놓으면 그걸 그대로 믿고 거기 의지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내실이 없다 보니까 거기 관련된 사람들이 더 힘들어집니다. 되게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죠? 이런 건 자기가 피해를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 분이 대통령으로 계신 한, 그 분이 만들어내는 '멋진 미래의 환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국민들이 점점 더 죽어나게 될 겁니다.
다수의 약자로부터 기름을 짜내어서 소수의 강자에게 집중시키면, 목소리 큰 소수의 강자는 그걸 잘했다고 칭찬하고, 그런 강자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 말이 맞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걸 추종하려고 하지요. 결과적으로는 사회 시스템 전반이 흔들리게 됩니다. 공기업 민영화에 의료보험 민영화에 이것저것 말 많은데요. 그런 것들을 국가가 관리해온 이유가 뭐냐하면, 민간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맡겨두면 고통받는 사람이 크게 늘어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들은 이야기인데, 어제 치료비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픈 아들이 강제퇴원당해서 결국 죽은 어느 남자가 초등학생을 유괴해서 토막살인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저는 지난 1월부터 뉴스도 신문도 거의 보지 않으니 이게 보도가 되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고, '만들어낸 괴담' 정도로 치부하면서 욕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미디어 매체에서 가공한 사실보다는 그걸 목격했다며 이야기하는 지인 쪽이 훨씬 더 신뢰가 갑니다.). 의료보험이 민영화되면 이런 사건이 줄어들지 늘어날지 의문이 듭니다.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해서 시장경제의 위대한 섭리에 거역하는 어리석음 정도로 치부하는 분들 자주 보이시던데, 그 제도들이 생겨난 이유 자체가 그 위대한 자본주의의 섭리 덕분에 대다수의 사람이 고통받던 시기에 '우리의 피와 기름을 빨아먹는 악당들을 처단하고 사이좋게 나누어먹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라는 공산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면서 각국 정부들이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이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건 아시는 걸까요? 이제 공산주의란 지나간 시대의 산물 정도가 됐으니, 다시 자본주의 원칙대로 약자에게서 최대한 짜내도 되리라 믿으신다면, 그 어리석은 믿음의 결과로 세상이 뒤집어지면서 흘려질 무고한 피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져줄까요.
말도 하기 싫을 정도로, 세상은 점점 더 미쳐돌아가고 있고, 제 정신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점점 더 괴로워집니다.
제발, 이 빌어먹을 세상이 살만하다고, 서로 죽고 죽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공존할 수 있다고, 그게 거짓이라도 믿고 살 수 있게, 제발 이 행복한 꿈에서 우리들이 깨어나지 않게, 적당히 좀 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점점 더 세상과 사람을 미워하게 되어가는 나 자신이 괴롭습니다.
# by Moonseer | 2008/05/03 19:25 | 그 이외 | 트랙백 | 덧글(4)
2008년 03월 24일
질문. 아마도 이런 이야기는 블로그의 게시판에 이런 식으로 쓰기는 좀 그럴 거에요. 부끄럽기도 하고, 괜히 보는 사람 눈꼴시잖아요.
그래도 한 번 정도 이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특히나 우리 꽤 심각하게 싸우고서 '두 번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하며 지낸 게 2주 정도였으니.
당신을 사랑해요.
이렇게 말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돼요. 나는 내 속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손을 휘저을 정도로 지독한 염세주의자에 속이 시커먼 사람이니, 과연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나와 종족번식을 합시다'라든가 '나를 위해 무보수로 평생 일해주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하는 회의가 들고는 하거든요. 당신이 가끔 나에 대해서 '저 사람 저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 아냐'하고 의심할 때가 있다는 걸 아니까 더욱 더 그렇죠. 아니, 설겆이는 내가 한다니까요. 한 때는 그걸로 평생 먹고살 생각도 했었어요. 아, 화장실 뚫는 것과 쓰레기 내다버리는 것도 가능해요. 꼼꼼하게 신경쓰고 손재주가 필요한 일만 안 시키면 돼요. 이렇게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은 남자가 되고 마는 거라고 알긴 하는데, 나라는 사람의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네요. 용서하세요.
그런데 사랑해요.
아마도 당신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보인 사람일 거에요. 그 과정까지 참 파란만장했고 당신과 내가 둘 다 비틀려있지 않았다면 벌써 수십 번은 더 갈라서다 못해 미워하는 원수가 되었을 터이지만, 여튼 우리는 여기까지 왔어요.
당신하고 나는 아홉 살이나 차이가 나고,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도둑놈'이라 말할 것이며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당신이 속고 있는 거라든가 당장 헤어지라거나 이야기할 거고. 나는 경제적으로 특별히 윤택하거나 아주 특출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도 아니에요. 도리어 내 나이대에 대해 사회에서 기대하는 기준보다 훨씬 뒤쳐져있고 하니까. 아, 뭔가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어째 글을 쓰면 쓸수록 마음이 암울해지네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사랑하고 있으니까.
전가의 보도처럼 쓰고 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참 덧없어요. 마음은 쉽게 변하고, 욕망에 미움에 두려움에 물들기도 하고, 당장 굶어죽을 상황이 되면 '사랑이 뭔가효?'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사랑의 한계니까.
그런데 그래도 사랑해요.
당신은 고집도 세고 성격에 모가 났으며 심술궂은 구석도 있고 까탈스럽고 화도 잘 내요. 간혹 당신이 내 앞에서 특히나 그렇게 되는 건 내가 당신을 열받게 하는 구석이 풍부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당신 본성이니까, 후.
사랑해요.
아마 당신은 내가 이런 식으로 트랙백을 남기는 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테고, 부끄럽다고도 생각할 테고, 그래서 내게 화를 내거나 한 동안 자기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거나 내게 '그 글 당장 지워요!'라고 문자를 보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사실 나도 잠을 자고 일어나서 머리가 맑아지면 '내가 무슨 깡으로 그렇게도 미친 짓을 했던가'하고 후회할 것 같긴 해요.
사랑해요.
당신 곁에 있을께요. 내가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 편이 될께요. 당신이 당신 자신으로, 내가 나로 있으면서도 둘 다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일들을 할께요. 약속이 아니고, 내가 그러고 싶다는 이야기에요.
나는 나이를 먹고 여러 일들을 겪으며 많이 변했고, 지금의 이 마음이 가만히 놔두더라도 언제까지나 이대로일 거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아요. 내 사랑의 유효기간은 아마도 내가 살아있을 동안 뿐, 죽고난 후에 어떻게 되는지 모르니까 그 다음에는 약속할 수도 없어요. 우리들의 삶은 아름답기만 하지도 않을 거고, 나는 늙어죽는 그 날까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투덜댈 거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일을 줄여나가는 나쁜 버릇을 버리지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 마음은 나무처럼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으니까. 가난에 쪼들리거나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인생이 더 꼬이거나 하지만 않는다면, 같이 살아가는 날들은 틀림없이 즐거울 거에요.
당신이 날 살아있게 하듯이, 나도 당신을 살아있게 하고 싶어요.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고 싶으니까,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사랑해요.
# by Moonseer | 2008/03/24 01:36 | 그 이외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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